2025년 5월 14일, 금융시장에 작은 폭풍이 일었다. 5월 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간 중 한미 경제 당국자들이 환율 정책을 논의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공개되자, 원/달러 환율이 순식간에 1,400원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시장은 즉각 '제2의 플라자 합의'를 떠올렸다. 과연 이번 밀라노 회동은 1985년 플라자 합의의 재연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의 시작일까?
밀라노 회동의 전체 맥락
2025년 5월 5일, 밀라노 ADB 연차총회
이탈리아 밀라노는 평소와 달리 아시아 금융계의 중심이 되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는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는 무대가 되었다.
핵심 참석자
- 한국: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 미국: 로버트 캐프로스 미 재무부 아시아 담당 부차관보
두 실무급 관리의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조용했지만, 그 파장은 컸다. 이들의 협의는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결정된 '양국 재무당국 간 별도 환율 워킹그룹' 가동의 첫 실질적 행보였다.
협의의 실제 내용
로이터와 부산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논의했다:
- 환율 정책 공조의 큰 틀: 구체적인 시장개입 지침이나 목표환율 설정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정기적 소통 채널 구축: 향후 환율 관련 이슈에 대한 정기적 협의 메커니즘 마련
-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대응: 미중 무역갈등, 인플레이션, 금융시장 변동성 등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중요한 점은 이 협의가 공식적인 합의나 성명 발표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985년 플라자 합의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시장의 즉각적 반응과 해석
환율 시장의 급변
5월 14일, 협의 소식이 공개되자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 급락
- 장중 최저점: 1,396.5원 (1,400원 방어선 붕괴)
- 하루 변동폭: 약 2.5%
- 장후 시간외거래에서도 하락세 지속
아시아 통화 동반 강세
- 일본 엔화: 달러 대비 1.8% 상승
- 중국 위안화: 0.9% 상승
- 대만 달러: 1.2% 상승
시장 참가자들은 이를 "미국이 암묵적으로 달러 약세를 용인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연계된 환율 조정 가능성에 주목했다.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
블룸버그의 분석 "최근 달러 약세와 아시아 통화 동반 강세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재의 글로벌 금융 환경은 4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관점 "미국의 무역 압력과 환율 논의의 연동은 플라자 합의와 유사하지만, 다자간 공식 합의 없이는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WSJ의 해석 "환율은 미국이 산업정책과 관세 협상에서 사용하는 레버리지 중 하나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직접적 개입보다는 간접적 압력이 주류가 되고 있다."
병행된 ASEAN+3 회의의 중요성
밀라노에서는 한미 양자 협의뿐만 아니라, 더 큰 다자간 협력의 틀도 논의되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확대
참가국: 일본, 중국, 한국 + 아세안 10개국
주요 합의 사항:
- CMIM 기금 규모 확대 (기존 2,400억 달러에서 증액)
- IMF 연계 없이 인출 가능한 비율 상향 조정
- 지역 경제 감시 기구인 AMRO의 역할 강화
새로운 긴급 대출 기구 도입:
- 팬데믹 대응 특별 기금
- 자연재해 긴급 지원 메커니즘
- 금융위기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이러한 역내 협력 강화는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 지역의 금융 자립도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와의 상세 비교
플라자 합의와 밀라노 회동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해진다.
플라자 합의의 핵심 요소
참가국과 형식
- G5 국가(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회의
- 공동성명 발표
명확한 목표
- 달러화 10-12% 평가절하
-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평가절상
- 미국 무역적자 해소
구체적 실행 수단
- 대규모 외환시장 공동개입
- 각국의 통화정책 조율
- 재정정책 협력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 일본과 독일은 내수 확대)
즉각적이고 극적인 결과
- 2년 내 달러 50% 하락
- 일본 엔화 100% 이상 상승
- 일본의 버블경제와 이후 장기침체
밀라노 회동의 특징
참가 범위와 형식의 차이
- 한미 양자 간 실무급 비공식 협의
- 공식 합의문이나 성명 없음
- 구체적 목표나 수치 제시 없음
접근 방식의 변화
- 직접적 시장개입 언급 없음
- 정책 공조의 큰 틀만 논의
- 점진적이고 단계적 접근
국제 환경의 변화
- 다극화된 통화 체제 (G20, BRICS, ASEAN+3 등)
- 거대한 파생상품 시장과 자본 이동
- 중국의 부상과 유로화의 존재
핵심적 차이점 분석
구분 | 플라자 합의 (1985) | 밀라노 회동 (2025) |
참가국 | G5 다자간 | 한미 양자간 |
형식 | 공식 정상회의 | 실무급 비공식 협의 |
목표 | 달러 절하 명시 | 구체적 목표 부재 |
수단 | 즉각적 시장개입 | 정책 공조 논의 |
공개성 | 즉시 공동성명 | 사후 언론 보도 |
시장 반응 | 지속적 추세 변화 | 단기적 변동성 |
현재 국제 금융 환경의 특수성
구조적 차이
1985년 vs 2025년 금융시장
1985년:
- 상대적으로 단순한 외환시장 구조
- 제한적인 자본 이동
- G5 국가의 압도적 영향력
- 브레튼우즈 체제의 잔재
2025년:
-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
- 실시간 글로벌 자본 이동
- 다극화된 경제 권력
- 암호화폐 등 대안 화폐의 부상
IMF와 국제기구들의 분석
IMF의 최근 보고서 "현재의 글로벌 금융시장은 198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상호연결되어 있다. 다자간 개입만으로 환율을 장기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BIS(국제결제은행)의 평가 "일일 외환거래량이 7조 달러를 넘는 현재, 정부 개입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시장의 기대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견해 "플라자 합의는 역사적 예외였다. 현재는 금융시장의 규모와 복잡성, 참여자의 다양성 때문에 그러한 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향후 시나리오와 전망
단기 전망 (3-6개월)
- 제한적 원화 강세
- 달러 약세 기조가 지속되는 한 원화 강세 가능
- 하지만 한국 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으로 급격한 변동은 제한
- 추가 협의 가능성
- 한미 환율 워킹그룹의 정례화
-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유사한 협의 확대
- 통상 협상과의 연계
- 환율이 무역협상의 한 카드로 활용
- 관세 인하와 환율 조정의 패키지딜 가능성
중장기 전망 (1-2년)
- 아시아 통화 협력 강화
- CMIM을 통한 역내 금융안전망 확대
- 디지털 통화 협력 가능성
- 달러 의존도 점진적 감소
- 새로운 국제통화질서 모색
- G20 차원의 환율 조정 메커니즘 논의
- SDR(특별인출권) 역할 확대 가능성
-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가속
- 기술적 변화의 영향
-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 블록체인 기반 국제결제 시스템
- AI를 활용한 환율 예측과 관리
한국 경제에 대한 시사점
기회 요인
- 수출 경쟁력 관리
- 과도한 원화 강세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
- 일본, 중국과의 환율 경쟁 완화
- 금융시장 안정성
- 미국과의 정책 공조로 급격한 자본 유출입 방지
- CMIM 확대로 위기 대응 능력 강화
- 투자 환경 개선
- 환율 안정성 제고로 외국인 투자 유치
- 역내 금융 허브로서의 위상 강화
도전 과제
- 정책 자율성 제약
- 미국과의 공조로 인한 독립적 통화정책 제한
- 국내 경제 상황과 국제 공조 간 균형 필요
- 구조적 압력
- 원화 절상 압력 지속 가능성
- 수출 중심 경제구조의 조정 필요성
- 대외 의존도 관리
- 미중 갈등 속에서 균형 외교 필요
- 다변화된 경제 파트너십 구축
결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
2025년 밀라노 한미 환율 협의는 1985년 플라자 합의의 단순한 재연이 아니다. 이는 훨씬 복잡하고 다극화된 국제 금융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책 공조를 모색하는 시도로 봐야 한다.
플라자 합의가 극적이고 일방적인 달러 약세를 통해 국제 경제 질서를 재편했다면, 현재의 접근법은 점진적이고 다자적인 협력을 통해 금융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한미 양자 협의는 이러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일 뿐이며, ASEAN+3를 통한 역내 협력, G20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되, 과도한 기대나 우려는 자제해야 한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보다는 중장기적 안정성, 일방적 조정보다는 다자간 협력, 단기적 이익보다는 구조적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결국 밀라노 회동은 플라자 합의의 재현이 아니라, 21세기형 국제 금융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향한 첫걸음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극적인 전환점이 아닌, 미래를 향한 점진적 진화의 시작점으로 말이다.
'Economic 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중 90일 관세 인하 합의 - 무역 전쟁 휴전의 의미와 전망 (3) | 2025.05.12 |
---|---|
ECB 기준금리 동결과 6월 인하 전망: 유로존 경제 불확실성 대응 (0) | 2025.05.09 |
구글 검색량 감소와 애플과의 관계 변화 분석 (0) | 2025.05.08 |
한국 경제성장률 0.8% 쇼크: 원인, 영향 및 대응 방안 종합 분석 (0) | 2025.05.08 |
가려진 진실: 중국 경제 데이터 블랙아웃의 실상과 영향 (0) | 2025.05.06 |